마루틴 루터 (1483~1546)

 
<목차>
의인은 믿음으로
어린 루터
청년 루터
생사의 갈림길
죄인 루터
슈타우피츠
로마 순례
속죄의 계단에서
면죄부
폭풍은 몰려오고
싸움은 시작되다
에크 대 루터
분노의 필봉
보름스 의회
나의 생을 바치나이다

<국외의 다른 인물들>
- 어거스틴 (354 ~ 430)
- 존 위클리프 (1329 ~ 1384)
- 존 후스 (1369 ~ 1415)
- 마르틴 루터 (1483 ~ 1546)
- 울리히 츠빙글리 (1484 ~ 1531)
<국내의 다른 인물들>
- 권신찬

 
 
 
 

의인은 믿음으로

천년의 긴 시간 동안 유럽인들을 꽁꽁 동여맸던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교황은 기독교가 포교된 국가와 교회를 모두 지배하고 있었는데, “교황은 해, 황제는 달”이란 말이 떠돌 만큼 정치,경제,교육,학문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교황의 권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침울하고 윤기가 없었으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참정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단지 성직제도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형식뿐이었다. 아무런 기쁨도 없는 상태에서 금품을 강요당할 뿐아니라 수입중 십분의 일을 교회에 바쳐야만 했다. 세속과 연합한 교회는 숱한 복음주의자들을 이단자로 몰아 화형에 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암흑 속에서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지켰던 소수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적인 신앙은 중세의 어둠을 서서히 거두어갔다.

정신적으로 억압된 인간 내부로부터 진리와 지식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은 신앙적으로 역반응을 일으켰다. 즉 하나님이 이 땅의 거민들을 위해 선포하신 뜻이 보이지 않자, 그 반동(反動)은 두 가지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하나는 남부 유럽을 중심으로 번져간 르네상스(고전의 재현)요, 또 하나는 북부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종교적 각성이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에서는 면죄부 판매를 계기로 그 불만이 표출되면서 종교,경제 면에서 다각적 위기를 겪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에,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대학 교수이며 조그마한 수도원의 신부가 당시 기존 교회의 교원 남용에 대한 날카로운 항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특별한 배경이나 방책 없이 어둠에 싸인, 그리고 알뜰히 숨겨져 있던 사탄의 죄악성을 낱낱이 드러냈으며, 찬란한 개혁의 새 날을 밝혔다. 골리앗 앞에 다윗만큼이나 미미했던 존재, 그가 바로 개혁의 완성자 마르틴 루터였다. 그런 그에게 역사의 새로운 장을 마련케 한 그 강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들릴라에게 끝내 들키고야 말았던 삼손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연이 있을 법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여기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아 살아간 루터’의 생애 속에 불굴의 ‘믿음’ 바로 그것이 존재함을 발견한 수 있다. 그는 그의 마른 풀 같은 생애가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 접붙여짐으로 인하여, 그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그때그때 맛보면서 은혜에 젖어살았던, 변화된 새 사람이었는지 않는가!

“하나님 성령의 역사만을 의지하라! 나의 체험으로 얻은 그 진리를 믿으라!” 라고 간증한 루터는 벌레 같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주를 의지하며 살았다. 우리는 이제 그의 생애에 계시된 숨은 진리들를 캐내어 나의 주변에 감도는 어두움을 몰아내고, 내 안에 숨어 흉계를 일삼는 사탄을 빛 가운데 드러내어 내 신앙 개혁의 계기로 삼음이 옳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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